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미리 알아두어야 할 배경이 있는데요. 다들 아시다시피 스파이더맨 영화판의 판권은 소니 픽쳐스가 갖고 있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는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있으므로 MCU에 스파이더맨이 출연하기 위해서는 두 회사 간의 계약이 필요합니다. 현재 스파이더맨이 MCU 영화에 나오는건 크로스 라이센싱 같은거에요. 스파이더맨 단독 영화는 마블 엔터테인먼트와의 스토리 조율 아래에 소니 픽쳐스가 맡아서 제작하고, MCU 영화에 스파이더맨이 출연하는 부분은 소니 픽쳐스와의 스토리 조율 아래에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맡아서 제작하는 방식입니다. 이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같이 협력하는 사이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두 회사는 자기가 만드는 영화의 흥행이 주 목적이 됩니다. 소니 픽쳐스는 MCU 영화의 흥행에 상관이 없고,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스파이더맨 영화의 흥행과 무관합니다. 물론 파트너 쪽이 잘 되어서 우리 영화의 흥행에 좋은 영향을 미치면 더 좋겠지만, 망해도 아무 상관이 없고, 결국 이들의 관계는 계약으로만 맺어진 관계라는 겁니다. 소니 픽쳐스와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스파이더맨 영화가 MCU에 속할 수 있는 영화 3편을 제작하도록 계약이 되어 있었어요. 물론 재계약을 할 수도 있지만, 노 웨이 홈의 각본을 만들던 시점에서는 재계약이 확정되지 않았죠. (MCU와의 연관을 3편 더 연장시키는 재계약이 2021년 여름에야 이루어진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니 픽쳐스 입장에서는 향후 MCU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상황을 가정하고 각본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재계약이 되면 다시 연결하는 내용을 넣더라도, 노 웨이 홈 본편은 연결이 끊어지도록 만들어야 했던거죠.
그리고 엔드게임이 있죠. 엔드게임에서 기존 컨텐츠를 모조리 끌어모아 드림팀을 만들고 이들의 서사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이 모든 조합을 놓고 소니 픽쳐스는 다시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를 소화하기로 한 것 같아요. MCU가 소개한 멀티버스를 이용하여 기존의 자사 스파이더맨 영화를 모두 정사로 만들어 한 자리에 모으는 소니 스파이더맨 드림팀을 구성하는거죠.
이 방식에 온전한 자신감은 없었는지, 이번 노 웨이 홈의 제작비는 1억 8000만 달러로 알려져 있습니다. 블럭버스터 영화 치고는 그다지 야심찬 규모는 아니에요. 게다가 기존의 유명 배우 캐스팅을 모두 불러 모아야 하는 부담이 있죠. 그래서 영화 완성도 면으로 문제가 좀 있는데, 우선 영화를 보면 스파이더맨 전작들의 주인공 및 빌런들의 촬영 분량이 아주 적어요. 각 등장 인물이 바뀌는 배경에 얼마나 나오느냐를 따져보면 다들 몇 번 안 나오는걸 알 수 있죠. 액션 장면이 적고 CGI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 부분의 영향이 크다고 보여요. 올스타를 모았지만 상당히 빠듯한 예산으로 만든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제약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는 드림팀을 모은 보람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기존 스파이더맨 주인공들과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행복하던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고, MCU와의 연결을 끊기 위한 기능적인 요구를 넘어서 상당히 비장하고 멋진 결말을 선사했죠.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에게는 나름의 행복한 결말을 주었고, 불완전 연소된 듯한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고 보여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2편의 흥행이 좋지 않았지만 당시 소니 픽쳐스 유출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영향이 컸는데, 그 사건 이후 갑작스럽게 시리즈가 중단되는 바람에 못다푼 감정을 많이 해소하는 내용이었다고 느껴지더군요.
이러한 성공적인 하드 리셋 이후에 스파이더맨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예측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톰 홀랜드는 재계약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소니 측이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새 시리즈를 시작하며 배역을 교체할 가능성도 낮게나마 있다고 보여요. 톰 홀랜드의 출연 여부와 관계 없이 MJ나 네드역의 경우에는 하차가 가능한 상황이 됐구요. 젠데이야는 생각보다 배우가 너무 떠버려서 재계약이 어찌 될 지 예상하기 힘들죠.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계약 여부에 따라 예상하는게 이상한 일이기는 한데, 요즘 시리즈 영화들은 현실적으로 이런 관점에서 해석하는 입장을 버릴 수 없게 되어버린게 아쉽기도 하네요. 하여튼 소니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쭉 보아왔던 관객으로서 이번 노 웨이 홈은 정말 감동적이었고, 다음 영화도 기대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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