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스파이더맨에서 실망한 요소가 몇 가지 있는데, 첫번째는 이 영화가 한 명의 히어로의 이야기를 다루는 독립된 영화로서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는 구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어요. 영화를 다 보고나면 결국 이 영화의 이야기는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이 됩니다.
토니 스타크가 무책임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무기를 만들어서 피터 파커에게 넘겨줬고, 스타크의 부재와 히어로로서의 정체성에 고민하던 순진한 파커는 이를 쉽사리 빌런에게 넘겨줘서 크나큰 위기를 초래했다가 엄청난 피해를 입은 끝에 겨우 수습한다.
이게 끝이에요. 이야기의 큰 골격이 모두 토니 스타크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토니 스타크가 사고쳤다 수습하는 이 패턴은 지금까지 MCU에 여러차례 나왔던 거고, 이를 스타크의 부재 후까지 끌어다 쓰는겁니다. 이러니 이 영화의 서사를 어떻게 좋게 평가할 수 있겠어요. 이건 거의 아이언맨의 후일담인데다 서사구조가 통째로 지금까지 MCU의 동어반복입니다. 마블 수장 케빈 파이기가 처음에 이번 스파이더맨을 페이즈4의 첫 작품이라고 발표했다가 나중에 페이즈3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정정했는데, 그렇게 바꿀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내용이 독립적이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그냥 에필로그에 가깝습니다.
두번째로 실망한 부분은 쿠키인데, 지금까지 MCU에서 쿠키를 사용한 방식에 비추어보면 이번 스파이더맨에서의 방식은 굉장히 과격합니다. 본편에서 진행했어야 할 중대한 사항을 쿠키에 던져놓고 뒷편에서 수습하라는 식으로 떠넘겨 놨는데, 이거 무책임할 뿐더러 뒷맛이 찝찝합니다. 영화가 끝났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MCU의 전작들에도 쿠키에서 다음 영화에 대한 힌트나 떡밥을 던져놓곤 했지만, 이런 식으로 본편에 바로 이어지는 큰 덩어리를 그냥 던져주지는 않았잖아요. 이번에 쿠키에서 다음편으로 미룬 문제가 2가지인데, 하나는 빌런이 스파이더맨에게 누명을 씌운거고 하나는 정체를 폭로한건데요. 죽고 없는 빌런에 대한 전작의 문제를 후속작에서 세세히 다루는건 MCU 스타일이 아닌듯 하니 누명 문제는 아마 대사 몇 줄 정도로 넘길 것 같고, 정체를 밝혀버린 부분이 작용해서 스파이더맨이 제2의 아이언맨처럼 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은 드네요.
물론 이번 스파이더맨 영화가 독립적으로 진행한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아요. 파커의 정신적인 성장이 다뤄지고 MJ와의 연애에도 뚜렷한 진전이 있죠. 전작이 보여준 하이틴물 분위기를 이어가는것 자체는 큰 불만이 없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문제들로 인해 영화 전체가 본편의 부록인 후일담으로 보이고 그나마도 한 편의 영화로서 완결성을 갖춘 채 끝난 것 같지도 않아요.
p.s. 글 추가합니다.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소니가 갖고 있어서 영화판의 경우 마블이 제작하고 소니가 배급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독특한 구조상 스파이더맨이 완결성을 가진 영화로 자리를 잡으면 소니가 직접 제작하려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마블이 스파이더맨 영화판의 내용을 일부러 MCU에 강하게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만드는게 아니냐는 이론이 있더군요. 소위 말하는 어른의 사정이 개입했다는 추론인데,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이번 영화에 대한 제 실망감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야기가 저렇게 흘러가게 된게 이해가 가기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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