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위쳐3를 바닐라(=DLC 없는 버전)로 플레이 하기는 했는데, 몇 가지 이유로 이번에 GOTY판으로 다시 플레이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플레이 하기로 마음 먹은 가장 큰 이유는 PS5를 샀는데 막상 할 게임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고, 위쳐3는 대형 DLC의 품질이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못 해본 점도 있고, 당시에 사이드 퀘스트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거의 메인 스토리만 쭉 밀고 말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파고들어 볼 마음이 있었고, PS5로 하면 로딩도 짧고 그래픽도 나아져서 좀 더 쾌적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이 2회차 플레이인 셈인데, 다시 해보니 예전에 글을 작성했을 때와는 달리 보이는 점이 있어서 좀 적어볼까 해요.
먼저 건조하게 기술적인 면만 보면, PS5로 구동해서 그런지 로딩은 확실히 빨라졌습니다. 다만 예전에 PS4로 바닐라를 플레이 했을 때 보다 게임 중 크래시가 많이 늘어났네요. PS5에서 실행해서 크래시가 나는 건지 GOTY판에서 안정성이 떨어진건지 구분 할 수가 없다는 점이 아쉬운데, 여튼 확연히 안정성이 떨어졌습니다. 자동 저장 기능이 잘 되어 있고 로딩도 빠르기 때문에 크래시가 나도 크게 당황스럽거나 하지는 않지만 역시 크래시가 나면 좀 귀찮기는 합니다.
위쳐3는 트로피 중에 난이도를 올려서 다회차 플레이를 해야 획득할 수 있는게 있는데 지난번에도 조작감이 짜증나서 손을 대지 않았거든요. 이번에 다시 해봐도 조작감은 별로더군요. 플래티넘 트로피는 과감히 포기하고 퀘스트만 다 미는 정도로만 파고 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숨겨진 퀘스트까지 공략을 보고 찾아서 하지는 않았지만 나오는 퀘스트는 다 했고 체감적으로 게임의 80% 이상 즐겼다고 생각하네요.
바닐라에서 스토리 퀘스트 위주로 밀었던 때와 이번에 사이드 퀘스트를 거의 다 밀고 난 후에 감상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역시 사이드 퀘스트는 스크립트 품질이 떨어지는구나 싶어요. 메인 퀘스트 위주로 스토리를 밀었을 때는 퀘스트의 품질이 대부분 훌륭하다고 느꼈는데, 사이드까지 다 민다는 심정으로 플레이 해보니 스토리가 대부분 훌륭하다고까지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냥 메인 시나리오 위주로 좋은 거였어요. 그리고 지난번에는 못 느꼈는데 DLC까지 포함하니까 생각보다 오역이 빈번합니다. 이상하게도 오역이 주로 각 시나리오의 막바지에 몰려 있어요.
오픈 월드로서는 역시 문제가 많았는데, 유비식 노가다보다 위쳐3의 노가다가 더 재미 없습니다. 맵 상에 있는 물음표 마커 중에 상당수가 의미 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구조인데, 조작감이 떨어지고 전투가 재미 없는 이 게임의 특성상 이 노가다가 너무 많고 너무 재미가 없어요. 어크식 노가다도 악명이 높지만 최소한 어크는 조작감이 좋고 싸우는 감각이 괜찮은 편이라 노가다를 하면서도 못할 정도는 아니다 싶은데, 위쳐3는 결국 포기하게 되더군요.
DLC는 정말 품질이 훌륭하더군요. 스토리는 하츠 오브 스톤 보다 블러드 앤 와인이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연애 루트의 경우 바닐라를 플레이 할 때는 예니퍼를 따라갔는데, 이번에는 퀘스트를 다 해보기 위해 양다리를 걸치다 독거노인이 되는 루트로 갔습니다. 독거노인 루트로 가면 블러드 앤 와인 끝부분에 시리가 나오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독거노인 루트가 진엔딩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더군요.
지난번에는 왜 못 캐치했는지 모르겠는데, 이번에 플레이 하면서 감탄한 부분은 여주인공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예니퍼와 트리스의 대사나 행동이 상당히 정교하게 조형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예니퍼가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아내 같다면 트리스는 나를 아직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 하는 여친 같더군요. 트리스가 나를 잘 모르는구나 싶으면서 지난번에 무의식적으로 예니퍼 루트를 따라갔던 이유가 생각나기도 했구요.
다시 해봐도 이 게임은 전반적인 스토리 품질, 캐릭터 묘사, 배경 그래픽, 잘 조형된 임장감 같은 면에서의 장점이 컸던 것 같아요. 오픈 월드 게임으로서는 조작감이나 전투 시스템에 결함이 있고 단순 반복 퀘스트의 수량과 배치에 문제가 있지만 장점이 단점을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