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좀 바쁘다보니 포스팅이 뜸했네요.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몇 가지 포스팅 꺼리도 시기를 놓쳐서 쓰기가 민망해졌고.. 얼마 전에 봤던 영화 얘기나 할까봐요.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우선 영화를 보기 전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몇 달전인가 Live Free or Die Hard의 제작발표를 보니 렌 와이즈먼이 감독을 맡았더군요. 렌 와이즈먼은 제가 개인적으로 헐리웃에 들어가서 가장 인생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냐구요? 이 사람이
Underworld (2003)의 감독이거든요. 언더월드는 고작 22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든, 소니에서 가을 비수기를 때우기 위해 만든 저예산 액션 영화였습니다. 근데 이게 의외의 히트를 쳐서 전세계에서 약 1억달러 정도를 벌어들였습니다. 게다가 렌 와이즈먼은 주연여배우였던 케이트 베킨세일과 결혼까지 했어요. 이런 덩굴채 굴러들어온 복에 깔려 죽을 녀석 같으니라구.
브루스 윌리스야 최근에 나오는 영화들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중이었으니 자신의 최고 히트작인 다이하드를 묵혀두기 아까웠을 것 같고, 렌 와이즈먼도
Underworld: Evolution (2006)이 다소 저조했기 때문에 좀 안전한 영화를 맡고 싶었겠죠. 언더월드2는 아무도 관심 없어하는 흡혈귀들의 정치싸움 배경 이야기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할애한 나머지 지루한 영화가 됐지만,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서 ‘멋지게 폼잡으며 싸우는’ 영화를 찍는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번 다이하드4.0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보고 난 감상은? 나쁘진 않지만 좀 아쉽다 정도입니다. 어느 정도 다이하드 시리즈의 분위기를 내기는 했지만, 뭔가 다이하드스럽지가 않아요. 3편에서는 좀 약해졌지만, 1,2편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시간제한, 장소제한이라는 두 가지 제한 속에서 주인공이 죽도록 고생하는 맛에 있었거든요. 근데 3편에서는 시간제한만 남기고 장소제한이 없어져서 좀 밋밋해졌죠. 그리고 이번 4편에서는 아무런 제한이 없어요. 1,2편에서 풍기는 뭔가 끈끈하고 인간다운 느낌은 다 사라지고, 왠지 고생하는 것 같으면서도 별반 고생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1,2편에서 인질 역할을 하던 아내를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딸의 등장은 좀 생뚱맞구요. 딸이 인질로서의 역할을 단 한순간이라도 했었는지 자체가 생각이 안 날 정도에요.
감독의 입장에서 보면, 언더월드 때에는 맘먹고 폼을 잡을 수가 있었지만 다이하드로 옷을 갈아입으니 폼을 잡을 수가 없었다는 것도 아쉬웠을 것 같아요. 렌 와이즈먼은 땀냄새 나는 셔츠를 입은 피 흘리는 underdog hero를 잘 부각시킬 수 있는 감독은 아닌 것 같네요. 그렇다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레니 할린을 다시 쓸 수도 없었을테지만요.
좀 아쉬운 점을 많이 적었는데, 총평은, 전반적으로는 액션영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영화에요. 다만 주인공의 대사가 너무 적다고나 할까.. 왠지 궁시렁거리면서 겨우겨우 적을 상대해야 할 것 같은 존 맥클레인이 말수도 적어지고 프로페셔널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아저씨가 나이 들면서 게릴라전 훈련만 더 받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