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시리즈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 시작 직후에 몰아치는 강렬한 액션, 그 이후 위기 상황을 해소하고 뮤직 비디오처럼 나오는 오프닝, 이후의 이야기의 큰 흐름이 공식처럼 정해진 상태에서 작은 변주들로 재미를 주는 구성, 여기에 곁들여지는 아름다운 풍광의 세계 여행, 마지막에 세계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본진에 침투해서 대미를 장식하고 끝나는 흐름까지 영화 한 편 한 편이 다 이러한 공식에 맞춰 제작됩니다. 여기에 언제나 약간의 변주들이 들어가는데, 이 변주가 얼마나 들어가는지에 대한 정도의 차이에 따라 클래식 본드에 가깝다거나 커다란 변화가 들어갔다는 평가만 있을 뿐이죠. 크게 변했다고 평가 받는 작품들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멀리 간 경우는 없었다는 느낌이죠.
전전작인 스카이폴에서 기본 공식에 꽤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는데(막상 따지고 보면 뭐 그렇게 멀리 간 것 같지도 않지만), 전작인 스펙터의 경우에는 기본 공식으로 많이 회귀해서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이었죠. 저는 기본적으로 클래식 본드를 좋아하는 편이라 스펙터도 꽤 재미있게 봤어요. 기본 공식에 맞춘 작품들은 특히 최후반부의 본진 침투 부분이 늘 편리하게 풀리는 편인데, 스카이폴로 007 시리즈에 들어온 팬들이 스펙터에서 이 편리하게 풀리는 부분을 납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이건 007 시리즈의 약속 같은거라 좀 상황이 편리하게 풀려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시리즈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노 타임 투 다이가 특정 부분에서 전작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이 부분에서 실패하고 있기 떄문입니다.
초중반까지 상황을 빌드업하는 부분은 전작들의 패턴을 그대로 따르는데, 감독이 캐릭터의 감정선을 상당히 꼼꼼하게 묘사하면서 상황을 잘 구축합니다. 기본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본드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어서 작품으로서 거의 역대급이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문제는 후반부의 본진 침투 부분에서 나옵니다. 기존 시리즈를 보아왔던 팬 입장에서는 후반부의 특정 시점에서 전작들 같았으면 영화가 끝나야 하는 지점이 나옵니다. 말 그대로 전작들에서라면 그냥 영화가 끝나고 후일담으로 넘어가는게 맞는 장면이 나와요. 근데 노 타임 투 다이에서는 그 장면 이후에도 영화가 계속되는데, 이후의 부분이 통째로 사족으로 느껴지고 영화가 지극히 지루해집니다.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이 전부 정해진 어떤 그림을 보여주는 결말로 향하고 있어서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구요. 이건 제작진이 현재의 결말이 강렬한 임팩트를 주기를 원해서 선택한 결과인데, 최후반부의 사족 같은 진행이 임팩트를 다 날려버립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진행이 왜 필요했는지 좀 의문이긴 합니다. 그냥 '그 장면'에서 영화가 끝나고 우리가 본 영화와는 다른 결말의 후일담으로 넘어갔으면 제작진이 노린 임팩트는 없었겠지만 끝부분이 지루하다는 인상은 안 받았을 것 같거든요. 결국 제작진이 어떤 임팩트를 노리기 위해 선택한 전개가 영화의 끝부분이 통으로 지루하다는 인상을 남기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감독은 꽤 잘 해냈다고 생각하고, 각본이 갖고 있던 노림수가 좀 무리였다고 봅니다. 여하튼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는 이렇게 끝났군요. 즐거웠습니다.